이번에 소개할 귀거래사는 제목이 익숙지 않아 검색해보니,
- 귀거래사 (歸去來辭)
- [명사] [문학 ] 중국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사부(辭賦).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내용이다.
라고 한다.
이번편에도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호텔뷔페에 온 단란한 네가족. 아내(박정수 배우),김영진 부장(전무송 배우),아들 상훈,딸 상희.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다.
승진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는
윗선에 뇌물공세를 해서라도 잘 보여서 승진을 따내자고 하고
보수적인 남편은 그녀를 만류한다.
회사 출근길,
도시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는 김부장.
교통체증에, 소음, 많은 인파들..
운전 중인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대형화물차. 삭막하기 짝이 없다.
식은땀을 흘려가며 그가 향하는 곳은 회사.
회사 로비에는 노조의 시위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왜인지 불편한 마음이 들어 계단을 직접 오른다.
(이 부분 연출이 맘에 들었다.다람쥐 쳇바퀴를 굴리듯이 반복되는 생애 같이 느껴졌다.
물론 요즘에는 이런 구도가 꽤 흔하지만 이 당시에 이렇게 찍기 쉽지 않았을 듯)
남자는 출근하자마자 이윽고 휴가를 낸다.
상사(오현경 배우)는 아니나 다를까 요즘같이 바쁜 때에 연차를 쓴 남자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상사로 나오신 배우분 낯이 굉장히 익었는데, 알고 보니 오현경 배우님이셨다.
사실 미스코리아 출신의 동명이인 배우님을 먼저 알았어서
아~~~이 분도 오현경이구나 했던 기억이 나는데 막상 이름이 생각나지 않다가 엔딩크레딧 올라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노사문제 해결이후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라고 언질을 주더니,
노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떠본다.
남자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좋겠다,
회사에서 먼저 아량을 베푸는 게 좋을 듯 하다고 속내를 밝힌다.
어이없어하는 상사를 뒤로 하고,
남자는 스스로의 안식을 찾아 떠난다.
갑자기 울려퍼지는 레퀴엠과 함께 여러가지 인간 군상들이 펼쳐진다.
(레퀴엠 하니 배틀로얄이 생각나는데...)
남자는 혼자 비행기에 오른다.
첼로를 든 소녀(故 전미선 배우)도 탑승한다.
(전미선 님이 고인이 되신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때는 이렇게 명랑하고 귀엽고 발랄하셨는데...
이 단막극의 주제 역시 삶과 죽음과 연관 있어서 그런지 묘하게 느껴졌다...)
초음파사진이 펼쳐지더니, 병원.
남자는 지인 최박사(남일우 배우)가 하는 병원에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온 것이었다.
결과는 췌장암. 길어야 3년이란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며 수술을 권하는 의사와 달리
시한부선고에 착잡해하는 영진은 아내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수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친구와의 조우를 마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온다.
택시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도착한 곳은 한 콘도.
바닷가가 보이는 곳이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거닐며 의사와의 대화를 곱씹는다.
최박사:김부장,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
김부장:난 기적같은 건 믿지 않아. 그저 추하게 죽음을 맞고 싶지 않을 뿐이야.
최박사:하여간 빨리 수술받을 준비를 해야해
김부장:먼저 내 삶을 정리할 시간을 좀 주게
남자는 삶을 정리하기 위해 머리를 식히러 온 것이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담배를 몇개비씩 태운다.
여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소
당신이 이 편지를 뜯어볼 때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정말 이런 선택을 한 나를 용서해주오.
자세한 재산 상태와 정리방법은 한변호사와 상의하길 바라오.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때는 이유가 있소.
최박사 말대로 내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나는 점차 판단이 흐려지게 될지도 모르오 .
그럼 아마 더 생에 애정을 느껴 살려고 발버둥치게 될 것 같소.
그렇게 돼서 남은 재산을 병치레에 날려버린 사람들을 봤소.
우리 애들은 아직 어리고, 앞으로 돈들 일이 태산같소.
그런데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병치레를 위해서 많지도 않은 내 재산을 날리게 할 수는 없소.
당신은 날 치료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난 아니까.
아내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기 위해 헌신을 다할 아내를 알기에,
모든 것을 져버리고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한 것...
제걱정보다는 끝까지 남겨질 사람들을 걱정해야 하는 가장의 굴레..
(전무송 님의 내레이션이 먹먹해서 받아쓰기해봤다.)
그러다가 벽에 걸린 검은새 그림에 꽂힌다.
흘러나오는 한 남자의 가곡...
구슬프게 흐르는 노래에 맞춰서 검은새의 몸부림같은 그림들이 이어서 움직이듯 화면을 가득 채운다.
너무 아방가르드하고 심오했다... 일분 넘게 이어지는 그림들...
애상에 젖은 채, 그림을 바라보다가 이내 떨어져 부숴진 액자를 보고 허탈해한다.
앞길이 막막한 남자는 해안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바로 첼로 소녀(故전미선 배우)
자유로운 영혼인 소녀는 그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졸지에 휴식방해를 하게 된 영진은 머쓱해하고, 소녀는 저멀리 걸어간다.
우연찮게 슈퍼에서 다시 마주친 두사람.
정답게 인사를 나눈다.
알고보니 숙소도 같고, 같은 복도를 공유하는 사이였다.
불꺼진 방 안에서 홀로 우두커니 있는 남자.
다시 혼자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 걱정에, 친구인 한 변호사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가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소녀다.
여긴 8시면 슈퍼가 문을 닫는다면서, 자신이 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데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시겠냐고 남자에게 제안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림도 없을 얘기..그때도겠지만.)
남자는 초대에 응하고, 소녀의 객실로 가서 밥을 얻어먹는다.
알고보니 고삼인 여고생. 첼로전공인 여학생..
집은 부산인데, 매주 교수에게 레슨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갔다가 온다는 것...
오늘은 서울에 가지 않고 제주행 비행기를 탄 것이라며 일탈을 자랑한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경계심없이 술술 얘기하기 시작한다.
어쩌다 하루 이틀이라도 레슨비를 늦게 내면 까칠하게 대하는 교수님 얘기를 시작으로,
자신은 첼로치는 것도 재미없고, 형편없는 실력으로 음대에 갈 자신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남자는 소녀의 작은 고민이 귀엽다는 듯이 얘기를 경청해준다.
그러자 천연덕스럽게 사랑많이 받고 자란 티를 내는 순수한 영혼의 소녀는
다음 날도 같이 놀자고 제안하고,
별다른 할일이 없었던 남자는 승낙한다.
다음날 두사람은 같이 제주를 관광하며,
신혼여행 온 부부들을 바라보다가 사랑 을 주제로 얘기를 나눈다.
소녀:결혼은 참 아름다운 것이죠?
남자:사랑이 아름다운 것이지.
이제 저사람들은 신혼여행이 끝나면 다시 인생이란 싸움터로 돌아가야 해.
소녀:그럼 사랑은 순간적인 거예요?
남자:영원히 지속되는 사랑도 있지.
소녀:네에...선생님, 저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남자:그야 물론. 누구에게나 사랑할 기회는 오지.
둘은 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함께 카페에 들른다.
작가냐고 묻는 소녀. 대작을 쓰러 오셨냐며 해맑게 웃고,
남자는 그런셈이지 하며 소녀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며 처음으로 자유를 맞으며,
소녀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닌다.
죽음에 대한 현실의 걱정은 잠시 잊어둔 채.
낚시도 하고...
스쿠버다이빙도 하고...
소녀는 남자와 함께 바다를 구경하다 말고, 남자에게 넌지시 묻는다.
소녀:왜 사람들은 죽으려고 하죠?
남자:누가?
소녀:자살하는 사람들이요.이 절벽에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남자: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들이 있겠지..
소녀:그래두요.. 어머! 저 새 좀 보세요!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 저 아름다운 황혼..바다와 땅속,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것들을 두고 어떻게 죽죠? 억울해서요..
(아마도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같다고 느껴졌다...
고인이 되신 전미선 배우님도 오랜만에 다시금 이 작품을 모니터링 하셨더라면
우울감을 잠시 접어두지 않으셨을까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둘은 기념품가게에 구경가서,
소녀는 남자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고,
남자도 답례로 갖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고 하자 고민하는 귀여운 소녀.
소녀는 갖고 싶어한 립스틱을 선물받는다.
영진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최박사에게 편지를 써내려 간다.
최박사.. 내 나이 올해 오십이오. 한국의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통계는 아직 유효한거요?
마흔 아홉세를 작년에 겨우 넘겨, 이제 한 십년은 더 가겠지 하고 생각했었소.
최형, 난 지금 회사에선 경영진과 젊은 후배들 사이에 껴있고,
집에선 노부모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아내와 애들 틈사이에 껴 있소.
최형...아마 형은 직업상 많은 죽음을 접해봤을 거요.
내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요.
내가 죽음을 결심하고, 이를 결행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서울을 떠났을 때,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함을 느꼈댔소.
그런데 말이요.오늘 내가 죽음만을 생각하던 그 시간에 나는 생명이 팔딱거리며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았소.
내가 여태껏 흘려보았던 자연이 숨소리를 내면서 활기치는 소리를 들었소.
그때 바람소리가 무서워서 혼자 잠들지 못하겠다는 소녀가 찾아오고,
남자는 알았다며 젠틀하게 다른 방에서 재우려 한다.
잠이 안 오는 소녀는 남자의 주변에 앉아서
편지쓰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건넨다.
소녀:모르겠어요 그냥 겁이 나요
학교, 집, 선생님, 부모 모두가요.
남자:학교, 집, 선생님, 부모 모두가 널 위해서 있는 거야
소녀:나의 무엇을 위해서요? 대학에 가는 걸 위해서요?
남자:그것도 일차적인 목표지.
소녀:전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여태껏 제 의지대로 뭘 해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이 시켜서 피아노도 배웠고, 첼로도 배웠고.
남자:그건 네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야.
소녀:대학을 들어가야만 어른이 되나요?
남자:꼭 그런 건 아니야. 그러나 네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건,
대학에 가지 못하는 사람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지.
소녀:혜택이요? 전 아무런 의미를 못 느껴요. 전 산다는 게 무서워졌어요.
돌아가서 레슨 시험 성적 그 모든 걸 다시 반복해야된다는 게 너무 싫어졌다구요!!
모든 현실들이 버겁다며 두렵다는 소녀. 시험과 성적때문에...
어쩐지 죽음을 앞둔 남자 앞에서 철없어 보인다.
의도한 것이겠지만...
남자:사람이 산다는 게 꼭 즐겁기만 한 건 아니야.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때문에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부모님들, 가르치는 선생님들,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거야.
그들이 당하는 고통.. 하루하루를 직장에서 가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
소녀: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죠?
남자:그 물음은 철학적이라 종교인도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같이 다니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지? 얼마나 재밌어서 웃고 소리쳤니?
생각 안나? 너 이런말까지 했지.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두고 억울해서 어떻게 죽냐고
소녀:그건 다 잊어버리기 위해서였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즐거움을 느껴보려고요
남자:그럼 넌..
안돼! 너 그래선 안 돼!
네 앞에는 많은 시간들이 있어.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알고보니 소녀는 이곳에 자살하러 왔던 것이었다...
남자는 소녀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창을 열고, 소녀가 무서워 하던 거센 폭풍을 가리키며 말한다.
남자:죽음은 바로 이 창밖의 어둠과 바람소리일지도 몰라.
삶이 이 방안의 따뜻함과 고요함이라면,
죽음은 저 창밖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일지도 몰라.
소녀:안 돼요! 그럼 안 돼요!
결국 소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첼로를 잡고 선율을 켠다.
다음날 소녀는 남자의 배웅을 받으며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영진 역시 떠나는 소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하늘은 나는 검은새를 발견하고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썼던 편지를 찢어버린다.
다시 양복차림으로 서울로 돌아와 삶이란 전쟁터로 향한다.
초록불 신호와 함께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마지막 내레이션이 흘러 간다.
최박사, 시간이 모든 걸 변화시키고, 한 생명에 있어서 변화의 끝은 죽음이란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확인하였소.
최형, 내가 암의 고통으로 판단력을 잃게 될 때, 그때 최형에게 나의 마지막을 맡기겠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의술을 사용해주시오.
최형, 언젠가 닥칠 마지막 순간까지.그때까지도 내 남은 생명의 한순간 한순간을 사랑하겠소.
지금의 이 숨막히는 공기와, 답답한 도시의 오후까지도..
결국은 소녀와의 대화 후, 그 자신 역시 살아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굉장히 웰메이드라고 느꼈다.
죽음과 삶에 대한 고뇌가 잘 드러나 있었다.
대사들이 하나하나 명문이라 맘속에 콕 박히기도 하고, 오랜만에 여운 있는 단막극을 만난 듯 하다.
'옛날 테레비 > 베스트극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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